@Mare_Tranquillitatis

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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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행복하던 그때를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지금을 위해서

너는 살 이유가 없는 나에게 “네가 살 이유를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 주겠다.”라며 다가왔다. 너의 말은 정말 사실이었고 이젠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게 됐다. 이렇게 만든 너를 가끔 원망하기도 한다. 죽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죽는 게 지금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새벽마다 손목을 붙잡고 울 때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네 얼굴이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무작정 화부터 낼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가는 네 얼굴이라 아마 길에서 만난다 한들 모르고 지나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완벽하게 잊지 않고 계속 되새김질을 하는 이유는 묻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다시 마주치게 되거든 “내가 이렇게 살길 바랐던 거야?”
네가 나를 향해 밝게 웃어준 얼굴에서 난 진심을 느꼈다. 그렇기에 난 망설였고 그걸 알아차린 너는 “어떤 대답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으니 기다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때 네가 아무 말도 안 했다면 더 좋았을걸. 마치 나를 이해한다는 듯 내뱉은 말이 두 팔을 벌리며 다가왔고 보통 사람이라면 무서워 도망치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다신 이런 말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자학하고, 비난하고, 눈처럼 흩날리게 될 때까지 울다 잠들기를 반복하겠지. 너를 만나기 전까지 매일 반복하던 하루라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다. 익숙하다 못해 무뎌진 느낌이었다. 애초에 누가 말해줄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네가 있다. 이건 정말 세기말의 발견이었고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었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기에 너 또한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면 어떡할까 싶었지만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너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해줬고 그렇기에 나도 서서히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집 밖을 나가는 일도 늘어났고, 말을 하는 횟수도 늘어났다. 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웃는 날이 많아졌다는 걸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무더운 새벽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너와 맥주를 까던 날 “그때 네가 했던 말은 진심이구나.” 생각으로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너는 나를 한번 보더니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나에게 너를 맡겼다. 취기가 올라 조금 따뜻해진 네 몸은 한여름이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우린 그날 서로를 서로에게 기댄 채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 새벽이 끝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날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신이 존재한다면 나를 그 새벽에서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을 텐데 무심하게도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게 더 슬플 것 같으니 생각하지 말자. 신에게도 외면당했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우린 거짓말이다. 우린 그때의 열대야처럼 사랑했으나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증명하듯 겪어보지도 않은 눈사태처럼 헤어졌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 거짓인 걸까. 사실 너는 외로움에 지친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진짜 그런 거 아닐까 싶어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럴 때마다 들을 수 있는 네 목소리는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보내기 충분했다. 우린 끝났고 난 너에게 전화할 구실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죽으려는 시도조차 안 했던 건 아니다. 죽기 위해 그동안 안 먹고 아껴뒀던 수면제를 꺼내던 날 거짓말처럼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다. 내 앞에는 나를 숙면으로 이끌어 줄 수면제가 가득했지만,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반 구석으로 수면제를 밀어 넣는 순간까지도 선반 문을 잠그는 순간까지도 나는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네 얼굴을 떨쳐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네 얼굴이 떠오르는 건 나에게 당연한 일이니까. 그날 밤 나는 잘 수가 없었다.
사실 헤어진 후 나는 구차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술이라도 마시고 모르는 척 연락해서 다음 날 사과라도 할까.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을 내뱉을 게 뻔했으니까.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맨정신인 상태로 연락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의 날 본다면 그러지 못했다는 것조차 알 수 있겠지. 너의 번호를 누르는 것까진 간단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너에게 할 말은 많았고 눈알을 움직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몇 분이 걸렸을까 꽤 많아 보이는 말들을 보내기 위해 전송 버튼 위로 손가락을 옮겼으나 나는 결국 누르지 못했다. 나도 왜 누르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저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걸 보내면 네가 나한테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네가 화를 내지 않을까. 애초에 벌써 차단했으면 어떡하지. 네가 이 글을 읽은 후 나를 더 싫어하게 된다면 어떡하지. 점점 차오르는 해수면에 나는 익사하기 직전이었고 머리끝까지 차오르기 전에 나는 스스로 바다에 빠졌다. 참았던 숨이 끊기고 폐에 물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죽었고 그래서 그날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완벽한 시나리오다. 결국, 몇 분이나 걸려 적은 문자는 몇 초도 안 돼서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지금의 나에게 “그때 뭐라고 적었는지 기억나세요?”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때와 똑같은 문자를 몇 번이고 적어 보일 것이다. 죽기 전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없다는 걸 겪어본 사람은 알 테니까.
이젠 네가 나한테 했던 말들을 하나씩 곱씹어보고 있다. 너무 씹어서 단물이 다 빠졌지만 삼킬 수는 없는, 그렇다고 매정하게 뱉어낼 수도 없는 말들이니까. 너를 의심한다는 건 아니다. 그때의 넌 나를 향해 웃는 걸 서슴지 않던 사람이니까.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여름을 닮은 그때의 너기에 지금의 네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너에게 한가지 바라는 게 있다면 너도 나와 같은 기억을 사랑하고 있으면 좋겠다. 서로가 같은 기억을 헤매다 보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그때의 너와 그때의 나의 모습으로. 만약 만나게 되거든 그때의 서로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서로에게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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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행복하던 그때를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는 지금을 위해서

방 예뻐요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것이 자유분방해서 혹여나 정신 사나워 보이면 어떨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살짝만 알려드리자면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입니다. 눈을 돌리기만 해도 좋아하는 게 보이는 건 진짜 괜찮은 일이라고 (요즘 들어) 깨달았거든요.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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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Mare_Tranquillitatis’s Profile Photo도모리
돌아보면 그렇게 나쁜 인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유 없는 손찌검을 당한 일도 없었고, 배고픔에 허덕이는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살면서 필요한 건 부족함 없이 받아왔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많이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곤 했다. 덩달아 자책도.)
이 세상 어디에는 나보다 힘든 삶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그걸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내가 죽는다면, 아니 죽는다는 생각이라도 한다면...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걸까? 누가 봐도 평범하게 살았네. 라며 말할 정도의 인생을 산 나는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인 걸까?
실제로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너보다 힘든 사람 많다는 말도, 그런 사람들도 다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줄이 굉장히 긴 산소호흡기를 달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드라마 혹은 영화처럼 스스로 산소호흡기를 벗겨내고 싶었다. 괜찮다고, 이제 다 끝이라고. 하지만 이런 대사와 연출은 내 시나리오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주인공 뒤 초점도 안 잡히는 배경이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다. 다만 산소가 나오지 않는 것을. [분명 (초점이 안 잡혀서) 흐리게 나올 테지만, 산소호흡기 정도는 티가 꽤 많이 나니까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을 내 인생의 숨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 없이 혼자 깨닫느라 좀 긴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멋대로 사용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인생의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언젠가 찾아올 행복을 기다리며 살아가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행복은 약하다. 그동안 쌓인 불행에 흠집도 내지 못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도 행복은 맨 밑에 깔려 있었다. 온갖 불행이 다 나간 후에야 비로소 행복도 나갈 수 있었다.
만 보 양보해서 오늘 엄청나게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고 치자.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까. 내일도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내일의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막의 신기루가 있다.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여 기쁜 마음으로 다가갔더니, 정작 아무것도 없다는 걸. 행복한 기억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도, 불행도 없는 죽음을 선택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얼마나 더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죽음을 갈망하는 나는 어떤 숨을 쉬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게 어떤 숨인지 알아내기 위해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 출처가 불분명한 숨을 쉰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 이기적인 선택을 한 사람. 둘 중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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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guage: English